선덕여왕의 통치
632년 제26대 왕인 진평왕이 죽자 신라는 큰 고민에 빠졌습니다. 왕위를 이을 성골 출신의 남자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신라에는 '골품제'라는 신분제도가 있었습니다. 부모가 모두 왕족이면 '성골' 한쪽만 왕족이면 '진골로 나뉘었습니다. 왕위에는 무조건 성골만 오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진평왕의 맏딸인 덕만 공주가 왕위에 올랐고 그녀가 바로 우리나라의 최초의 여왕인 선덕여왕입니다. 선덕여왕(善德女王, 606~647)은 신라의 제27대 여왕으로, 신라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여성 군주이고 성품이 너그럽고 총명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선덕여왕이 왕이 되자, 나라 안팎으로, 위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신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던 백제의 공격이 계속되었고, 일부 귀족들이 여성이 왕이 된 것에 불만을 품기 시작하였습니다. 하지만 선덕여왕에게는 듬직한 지원군이 있었습니다. 조카 신하인 '김춘추'와 장군 '김유신'이었습니다. 김유신은 백제의 공격을 막았으며, 김춘추는 고구려와 당나라를 오가며 원병을 요청했습니다. 또 선덕여왕은 통치 기간 동안 불교의 발전을 촉진하고, 주요 불교 사찰을 건립하였으며, 불교적 이념을 국가의 이념으로 삼았습니다. '황룡사 구층 목탑'을 세워 왕권을 강화하고 불교로 백성의 마음을 하나로 합치고자 하였으며, 또 경주에 별과 달을 관찰할 수 있는 첨성대를 세웠습니다. 선덕여왕의 군사적 성공과 외교적 성과, 그리고 문화적 업적은 그녀의 통치에 대한 신뢰를 높였고, 신라 사회의 단결을 강화하였으며, 신라 역사에서 중요한 여성 지도자로 평가되며, 그녀의 통치 시기는 신라의 문화적, 정치적 황금기로 기억됩니다.
신라와 백제의 충돌
신라와 백제는 삼국 시대 동안 서로의 영역을 확장하기 위해 끊임없이 충돌했습니다. 백제는 그 당시 신라의 남서쪽과 서쪽에 위치하며,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역을 차지하고 있었고, 신라와의 국경을 맞대고 있었기 때문에 두 나라는 자연스럽게 군사적, 정치적 긴장 상태에 있었습니다. 선덕여왕이 즉위한 직후, 백제는 신라의 국경 근처에서 공격을 감행했습니다. 이 공격은 신라의 군사력과 방어 체계를 시험하는 중요한 전투로 기록됩니다. 선덕여왕은 즉시 군을 조직하여 방어에 나섰고, 이 전투에서 신라는 큰 피해를 입었지만, 백제의 공격을 어느 정도 저지할 수 있었습니다. 백제는 더욱 적극적인 군사 작전을 펼쳤습니다. 백제의 무왕(武王) 즉, 무왕 시대에는 신라의 영토에 대한 본격적인 군사 작전이 벌어졌습니다. 이 시기에는 신라의 여러 성이 공격받고, 지역 주민들이 피해를 입었습니다. 선덕여왕은 이러한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 군사적, 외교적 노력을 강화했습니다. 선덕여왕은 군사적 방어에만 의존하지 않았고, 외교적 수단을 동원하여 백제와의 긴장을 완화하고, 동맹을 형성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며 특히, 백제와의 협상과 외교적 조치를 통해 신라의 방어 체계를 강화하고, 백제의 공격을 어느 정도 억제할 수 있었습니다. 선덕여왕의 통치 기간 동안 백제와의 갈등은 신라에 많은 어려움을 안겼지만, 그녀의 외교적 노력과 군사적 방어가 신라의 안정을 유지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백제와의 갈등은 신라의 군사력과 방어 능력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후 신라는 백제와의 전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유하게 됩니다.
첨성대의 역사적 가치
첨성대는 신라 제27대 여왕 선덕여왕의 통치 기간 중에 건립되었습니다. 첨성대는 둥글고 높은 원통형 구조로, 전체 높이는 약 9.17미터입니다. 건물의 외부에는 원형의 기단(基壇)이 있으며, 상부는 점점 좁아지는 형태로 되어 있습니다. 첨성대는 돌로 쌓아 올린 구조로, 원형의 기단 위에 여러 층의 원통 형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총 27개의 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는 신라의 천문학적 상징을 나타냅니다. 각 층은 점차적으로 좁아지며, 위쪽에는 작은 구멍이 뚫려 있어 천체 관측에 사용되었습니다. 이 구멍은 주로 별의 위치를 기록하는 데 사용되었고, 천체의 움직임을 관측하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선덕여왕은 천문학과 과학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당시 신라의 천문학적 지식을 발전시키고 이를 국가의 관리와 정책에 활용하기 위한 필요성이 있었습니다. 선덕여왕의 통치 아래에서 첨성대는 천문학적 관측을 통해 계절의 변화와 천체의 움직임을 정확히 이해하고, 이를 국가 운영에 활용하려는 목적에서 건립되었습니다. 신라 시대 사람들은 별의 움직임과 위치를 관찰하여 계절의 변화를 예측하고, 이를 농업과 사회적 활동에 반영했습니다. 첨성대의 구조는 별과 천체의 위치를 정확히 관측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으며, 이를 통해 계절의 변화를 이해하고, 중요한 농업 일정을 계획하는 데 도움을 주었으며, 현재는 신라의 과학적, 기술적 발전을 엿볼 수 있는 우리의 소중한 유산으로, 당시의 천문학적 관심과 기술을 현대에 전해주는 소중한 문화재입니다.